
불법 판치는데 합법 업체만 규제받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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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중심으로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불법 코인 조직이 특정 모임 공간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관계 기관의 현장 단속은 사실상 피해자 신고에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면 공정위와 지자체는 공제조합에 가입하고 정식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에 대한 행정 점검을 지속하면서 업계 전반의 규제 피로도가 심화되고 있다.
피해 신고 없으면 단속 불가능?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 일대 공유 오피스, 세미나룸, 소규모 강연 공간 등은 불법 다단계와 코인 모집 조직의 ‘순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네트워크 마케팅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들은 상호나 사업 모델을 수시로 변경하며 특정 공간을 단기간 임차해 설명회를 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회피한다.
최근 선릉역 인근 ‘더모임’, 역삼역 인근 ‘GRC 역삼모임공간’ 등 공유 오피스와 모임 공간에서는 MWR과 같은 불법 여행 다단계, 불법 코인 투자 모집, 국내에 제품이 ‘반입 금지품목’으로 지정되고, 심지어 사업자들이 지난해 12월 무더기로 유죄를 선고받은 리웨이 등의 사업설명회가 버젓이 개최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식품을 치료제처럼 홍보하는 행위는 식품위생법과 방문판매법 위반 소지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지나 단속 없이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며 “불법 조직이 오프라인 공간을 조직적 리쿠르팅 채널로 활용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불법 조직을 단속해야 할 경찰 등 관계 기관은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불법 코인 사건 등은 피해자 신고 또는 명확한 입증 자료 확보 없이는 수사 착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코인 투자 모집이나 해외 기반 다단계 조직은 계약 구조, 보상 체계, 상품 실체 등이 모호하게 설계돼 있어 현장에서 즉각적인 위법성 판단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경찰관은 “불법 다단계나 유사수신은 구조 분석과 피해 사실 입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이나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선제적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현장 단속 중심의 접근에는 법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이 같은 구조가 사실상 ‘사후 처벌’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피해가 현실화된 이후에야 수사가 개시되는 구조에서는 불법 조직이 빠르게 확산되고, 일반 소비자는 장기간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유사수신·불법 다단계는 전통적인 범죄와 달리 설명회, 네트워크 추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점진적으로 피해자를 늘리는 구조”라며 “사후 대응 중심의 법 집행은 본질적으로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합법 업체는 정기 점검·행정 리스크 상시 노출
이와 대조적으로 공제조합에 가입하고 공정위에 등록된 합법 다단계판매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촘촘한 규제와 행정 점검을 받고 있다. 공정위와 지자체는 매년 다단계판매업체 현장 점검을 실시하며 ▲상호·주소 변경 신고 여부 ▲프로모션 3개월 전 고지 의무 ▲후원수당 지급 기준 초과 여부 ▲광고·홍보물의 법 위반 소지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업체들은 이러한 점검 자체를 무조건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규제의 방향성이 ‘불법 시장 차단’이 아니라 ‘합법 시장 관리’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프로모션 사전 고지 의무나 후원수당 산정 방식, 상호·주소 변경 신고 여부 등 일부 조항은 현장 영업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 업체 대표는 “불법 조직은 회사 실체도 없이 코인, 투자, 건강식품을 결합한 모델로 무제한 영업을 하는데, 합법 업체는 마케팅 이벤트 하나에도 행정 해석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익에 민감한 사업자들은 더 위험한 시장으로 밀려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불법 조직은 상호, 사업 모델, 강사, 설명회 장소를 수시로 바꾸며 책임 주체를 흐리는 반면, 합법 업체는 등록 정보, 공제조합 가입, 회계 구조 등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어 오히려 행정 점검의 주요 대상이 되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실제 불법 설명회가 빈번하게 열리는 지역에 대한 현장 단속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은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테헤란로 일대는 합법적인 네트워크 마케팅회사들이 밀집한 지역이자, 불법 조직의 설명회가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곳으로 업계에서는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대표나 직원들 사이에 공무원들이 테헤란로 건물 3~4곳만 무작위로 방문해도 불법 설명회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기관이 ‘신고 없이는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업무 실적이나 성과 압박을 받는 공무원들이 단속에 시간과 자원이 많이 드는 불법 조직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리가 수월한 합법 업체 관리에 더 행정력이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업계는 현행 단속이나 규제 구조가 유지될 경우 불법·음성 시장은 더욱 정교하게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규제를 준수하는 합법 업체와 선량한 사업자만 행정 부담과 경쟁 왜곡의 비용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특히 합법 시장에만 규제 리스크가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건전한 기업 활동과 신규 사업 진입 의욕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방 중심의 상시 감시 체계와 현장 단속 역량 강화, 불법 조직에 대한 선제적 대응 시스템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규제의 무게추는 계속 합법 시장에만 쏠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비자 보호는 공백 상태에 놓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 질서를 지키려는 사업자들과 등록·공제 체계 안에 있는 기업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