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최고의 명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웃음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폭넓은 긍정적 효과를 준다.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웃음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건강에 이점을 주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웃음은 유산소 운동만큼 혈관에 좋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마이클 밀러 박사는 웃음이 심혈관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웃음은 혈관 기능을 향상시키고 혈류를 증가시켜 심장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반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장으로 가는 혈류를 제한한다.
밀러 박사는 건강한 남녀 2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을 웃게 만들기 위해 코미디 영화인 킹핀(Kingpin)의 일부 장면을 시청하게 했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의 오프닝 전투 장면을 시청하게 했다.
연구진은 팔의 동맥을 통해 혈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초음파 기술을 사용했고, 그 결과 킹핀을 본 20명 중 19명이 평균 22% 혈류가 증가했다. 밀러 박사는 이 수치가 유산소 운동의 효과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 후에는 20명 중 14명이 혈류가 감소했고, 평균 감소율은 35%로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신체의 면역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공포와 관련되어 있으며, 아드레날린은 신체가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그러나 이런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해로울 수 있다. 밀러 박사는 웃음이 어떻게 혈류 변화에 영향을 주는지 이번 연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웃음이 운동할 때처럼 쾌감 호르몬을 방출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밀러 박사는 이 엔도르핀이 스트레스 호르몬의 효과를 차단하고 혈관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웃음은 혈관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산화질소(nitric oxide)의 분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당 연구 결과는 미국심장학회(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회의에서 발표됐다. 밀러 박사는 운동을 웃음으로 대체하라고 권장하지는 않지만, 이번 결과에 따라 하루 15분 정도는 웃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면역력 강화, 통증 완화, 소화 기능 개선까지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면역 세포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특히 면역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NK세포(자연살해세포)의 활성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감염 예방뿐 아니라 암세포 억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웃음은 면역글로불린A 수치를 증가시켜 호흡기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웃음은 천연 진통제 역할을 한다. 웃을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은 뇌에서 생성되는 신경 전달물질로, 통증을 완화하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실제로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웃음 요법을 시행한 결과, 통증 인식이 완화되고 진통제 사용량이 줄었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유머가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긍정적 정서를 강화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스트레스 완화에도 탁월하다. 웃을 때 자율신경계의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신체가 이완되고, 불안과 긴장이 감소한다.
웃음은 복식호흡을 유도해 폐활량을 증가시키고, 체내 산소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이는 기분뿐만 아니라 장기 기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특히 웃을 때 복부 근육이 반복적으로 수축되면서 장 운동이 촉진되어 소화 기능이 향상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웃음이 변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됐다.
웃음은 타인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집단 내 결속력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웃음을 더 많이 유발하며, 이는 사회적 유대감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웃음은 ‘비언어적 소통’의 핵심으로 작용해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고 갈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억지웃음도 효과가 있을까?
억지웃음도 일정 수준의 긍정적인 생리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2년 캔자스대학교 타라 크래프트와 사라 프레스먼 연구팀은 단지 얼굴 근육을 이용해 웃는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반응이 줄고 기분이 개선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는 긍정적인 얼굴 표정을 은밀하게 조작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심혈관 반응과 정서적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다. 총 170명의 참가자는 연구의 목적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젓가락을 입에 물어 듀센 미소(Duchenne smile: 진짜 미소), 표준 미소(standard smile), 또는 중립적인 표정을 유도한 채 두 가지 스트레스 유발 과제를 수행했다.
미소를 짓는 그룹의 절반에게는 명시적으로 “웃으라”고 지시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웃음에 대한 지시 없이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미소를 짓도록 유도된 참가자들은 웃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중립 표정 그룹보다 스트레스 회복 과정에서 심박수가 더 낮게 나타났다. 특히 듀센 미소를 지은 참가자들이 약간 더 유리한 효과를 보였다. 또한 웃는 그룹 중에서도 명시적인 지시 없이 웃은 참가자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긍정적 정서가 감소한 정도가 중립 그룹보다 작았다.
이러한 결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긍정적인 얼굴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생리적·심리적으로 모두 유익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진짜 웃음이든 억지웃음이든, 일상에서 웃음을 자주 지으려는 습관이 건강을 지키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두영준 기자 mknews@mknews.co.kr